인터뷰 – “바리이야기” 안정민 연출/작가님


창작집단 푸른수염은 지난 8월 15일과 16일 양일동안 을지공간에서 판소리 낭독극 <바리이야기>를 공연하였습니다. 창작집단 푸른수염의 대표이자 <바리이야기>를 극작/연출하신 안정민 연출/작가님을 8월 23일 을지공간의 사무실에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인터뷰 내용의 이해를 위한 목적으로 <바리이야기>의 줄거리를 간략히 요약하면, 대자연의 여신은 오줌으로 인간 ‘소료’를 만들어내고 남편으로 삼습니다. ‘소료’는 틱스플라를 만들어내고 인간만의 세상을 건설하려고 합니다. 소료의 인간 세상은 자연을 오염시키고 망가뜨립니다. 자연의 오염으로 바다코끼리들이 죽어가고 사랑하는 동물들이 고통받는 모습을 본 바리는 자연을 되살릴 생명수를 찾아서 대자연을 살내는 이야기 입니다.
도우너와 안정민 연출님의 일대일 인터뷰로 시작하였으나, 사무실에서 뒹굴고 있던 코난과 독고탁이 합류하면서 한판 수다로 이어졌습니다.
도우너: 창작집단의 이름이 재미있어요. “푸른수염” 이라는 이름을 짓게 된 경위가 무엇인지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안연출님: 그 이름에는 여러 생각이 포함되어 있어요. 주로는 푸른수염이라는 설화에서 모티브를 받았어요. 푸른수염 설화 내용을 조금 설명드리면, 옛날에 푸른수염을 가진 한 귀족이 있는데 그와 결혼한 여자들이 모두 사라져요. 남아있던 한명의 여자가 그 원인을 찾기 위해서 그 귀족과 결혼을 하고, 귀족의 집에 들어가죠. 그리고 사라진 여자들에 대한 단서를 찾기 위해서, 큰 집의 방문을 하나 하나 열고 그 안을 조사해요. 그런 호기심 많고 실험적인 자세를 가져보자는 취지가 있었어요.
또다른 생각은, 파릇파릇하게 수염처럼 나는 새싹을 의미하기도 해요. 제가 2017년도에 처음으로 창작집단을 만들 때, 생태 공동체를 구상 했었거든요. 생태 공동체가 운영하는 텃밭에서 자라는 새싹… 그런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죠.
도우너: 이름의 경위를 알고 나니 더 흥미롭네요. 그렇다면 푸른수염 창작집단은 여성주의 또는 생태주의를 지향하는 건가요?
안연출님: 그렇게 시작한 것은 아닌데, 여성주의적 지향이 강하죠. 2017년도에 집단을 시작하고, 2018년도 정도에 지금의 4인 체제로 자리 잡았는데 전원 여성이에요. 작업을 하다 보면 ‘나’로부터의 이슈에서 시작을 하게 되는데, 전원이 여성이다 보니 여성주의적 접근 방식이 강해지는 것 같아요.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인간, 동물, 식물 모두 살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명칭을 붙인다면 에코페미니즘을 추구한다고 볼 수 있겠죠.
저는 일단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내가 생각하는 생각의 정수가 무엇이든 그 것이 에코와 만나야 한다고 생각하구요. 에코 공산주의도 좋고, 에코 자본주의라도 좋다고 생각해요… 살리는게 가장 중요한거 아닌가요?
도우너: 지금 전원 여성으로 구성된 창작집단을 이끌고 계신데, 앞으로 남성 단원은 받지 않으실 계획인가요?
안연출님: 아뇨 전혀 그렇지 않아요. 다만… 제가 여자들에겐 인기가 많은데, 남자들에게 인기가 별로 없나봐요(웃음). 2017년도 시작할 때는 남자 단원들도 있었고, 나중에도 뜻이 맞는 분은 얼마든지 환영해요.
도우너: <바리이야기>에 대한 이야기로 조금 방향을 바꾸어 보면, <바리이야기>는 판소리 형식이라는 점에서 상당히 특징적인 것 같아요. 그 전에는 을지공간에서 <당곰이야기>라는 작품을 상연하신 적 있고, 그것도 판소리 형식 작품이었죠. 판소리 형식의 작품을 하시는 이유가 있으신가요?
안연출님: 저는 영국에서 극작을 공부했는데요, 영국에서의 극작은 언어가 가지는 음악적 요소를 굉장히 강조를 해요. 극중 인물들이 각자 고유의 리듬을 가지고 있죠. 저는 음악적인 흐름을 살리는 글쓰기에 항상 매력을 느껴왔구요, 판소리 형식은 그런 음악적인 흐름을 살릴 수 있는 아주 재미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여성들이 창을 이용하여 연극을 한 여성국극에서 힌트를 받기도 했구요.
코난: 판소리 형식으로 글을 쓰는건 어렵지 않나요?
안연출님: 하하, 의외로 어렵지 않아요. 한 3~4일 정도 내리 듣고 나시면, 아니리 부분은 비슷하게 쓰실 수 있어요. 아니리 부분을 쓰다보면 흥이 생겨서 손가락님이 알아서 쳐주세요.
도우너: <바리이야기>를 쓰시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요?
안연출님: 저는 어렸을 때부터 신화/설화를 정말 좋아했어요. 신화는 삶의 뿌리 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인생을 나아가게 하고 지탱해주는 힘이 되는거죠. 그런데 한국의 신화/설화를 읽을 때마다, 나는 한국 사람인데도 소외되는 기분이 들었었어요. 그게 좋은 기분은 아니죠. 그러다가, 새로 써야겠다. 배타되는 사람이 없는 신화/설화를 써야겠다. 라고 마음먹었어요. 제가 쓴 희곡을 읽더라도 배타되는 사람이 또 있을 수 있겠지요. 하지만 적어도 저의 이상향은 배타되는 사람이 없는 신화/설화 쓰기로 향해 있어요. 그런 이상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차이가 있자나요. 배타되는 사람이 없는 신화/설화가 남으면 나중에 더 많은 사람들에게 힘이 될 수 있겠지요.
코난: (옆의 소파에 반 누워있다가 인터뷰가 진행되는 테이블로 어느새 옮겨와서) 세상에… 천년의 프로젝트이군요! (다들 웃음) 대단하신데요.
안연출님: 저는 신화/설화를 너무 좋아해서 안 보고 살 수는 없어요. 어쩌면 초딩 같은 단순한 마음인거죠… 맘에 안드는데 내가 다시 써볼까 하는 (웃음).
도우너: <바리이야기>는 <바리 공주> 설화를 다시 쓴 것으로 보이는데요…<바리 공주>를 선택하신 이유가 있나요?
안연출님: 제가 다시 쓰고 싶은 설화의 리스트가 쭉 있어요. 그 중에 제일로 갑갑한 정말 너무 갑갑한 설화가 바리 공주였어요. 리스트의 윗쪽에 있었던거죠.
도우너: <바리이야기>를 통해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었다면?
안연출님: 우선… 다 같이 플라스틱 좀 적게 쓰면 좋겠다는 것. 하지만 계몽의 의도는 없어요. 저는 <바리이야기>에서 결국 죽음을 맞이하는 소료와 더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성취하고 싶고, 자연으로부터 독립하고 싶고. 그 욕망은 정말 자연스럽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 욕망을 어떻게 콘트롤하고 다 같이 살아가는 방향으로 활용할 것인가가 고민의 포인트이고 <바리이야기>를 통해서 던지고 싶었던 화두에요. <바리이야기>에서 바리가 어머니인 대자연의 신에게 하는 이야기가 있거든요. 인간을 벌하고 꾸짖을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 하여금 자연을 살피고 사랑하게 하는 마음을 달라고. 북극곰이 좋고 사랑하게 되면, 북극곰이 먹이를 찾을 수 있도록 해주고 싶지 않겠어요? 박쥐가 좋으면, 박쥐가 살 수 있는 동굴을 주고 싶지 않겠어요?
코난: <바리이야기>에서 플라스틱을 틱스라플이라고 부르시는데, 그건 어떻게 생각하신 이름이에요?
안연출님: 그건… 그냥 막 쓰는 과정에서 손가락님이 그렇게 쓰라고 하셨어요…(웃음)
독고탁: 틱스라플… 그리고 지구 온난화에 대해서 희망적으로 생각하세요? (인터뷰 당일 오전에 진행된 SNS 홍보디자인 워크샵에서 배운 포토샵을 열심히 복습하는 듯했는데, 사실은 인터뷰 내용에 심취해 있었던 듯)
안연출님: 희망적으로 생각을 해야만 한다고 생각해요. 선택지의 문제는 아니고, 태어났기 때문에 해야만 하는 일이고 방법을 찾아야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구체적인 방법에 관해서… 저는 죄의식이나 죄책감을 주는 방법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럼 예술적으로 어떻게 방법을 찾을 수 있을까 고민을 하고 있는데요, 동물을 존중받는 개체로서 인정하고 함께 살 수 있도록 하는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일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동물과 친하게 되면, 동물을 사람과 같은 존재로 보게 된다면, 동물들이 괴로워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올 행동은 안하게 되지 않을까요? 동물과 함께 사는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작업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예를 들어 저는 개를 키우고 있는데, 그 개는 제가 본 어느 개체보다 가장 멋진 존재거든요. 저는 이 개가 너무 좋은데, 왜 얘와 결혼하지는 못하는걸까. 이런 엉뚱한 생각을 관객들이 할 수 있도록 한다면, 그게 제가 찾는 방법 중 하나가 될 수 있겠지요.
코난: 저는 <바리이야기>가 정말 너무 재미있었어요. 특히 다들 판소리를 잘 하셔서 깜짝 놀랐는데, 어떻게 훈련 받으신거에요?
안연출님: 국립국악원 워크샵에 가서 배웠어요. 그런데 판소리는 워낙 대단한 분야니까… 저희가 잘 하지 못하는데 어디 가서 판소리를 활용한 극이라고 이야기해도 되나 많이 망설였어요. 창은 잘 못하고 주로 이나리(말)를 많이 활용했어요.
독고탁: 저도 <바리이야기>를 너무 즐겁게 봤어요. 배우들의 연기뿐만 아니라 소품 하나 하나까지 정말 정성이 많이 들어간 연극이라고 생각이 들더라구요. 성의가 넘치는 작품이라고나 할까. 이번에 하신 공연은 쇼케이스였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번만으로 그치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요. 앞으로 더 발전시켜서 공연하실 계획은 없나요?
안연출님: 그렇게 봐주셨다니 감사해요. 저도 기회가 있으면 정식으로 진행하면 좋겠어요. 이번에는 조금 길었다는 평이 있었는데, 길이를 조금 줄이고, 다른 전통 예술적인 요소들은 좀 더 추가하구요. 예를 들면 전통 사자춤처럼 곰춤도 넣고… 여러가지 전통 예술적 요소를 종합선물세트 같은 느낌으로 해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독고탁: 저는 굿을 모티브로한 작품을 구상해본 적이 있어요. 그리고 구상을 정확하게 표현한 것은 아니지만 그와 유사하게 작품을 만들어 보기도 했구요. 생각보다 평이 좋더라구요.
안연출님: 오, 그것도 재미있는 아이디어인데요?
코난: <바리이야기>를 더 발전시키는 작업 외에 앞으로 더 해보고 싶으신 작품이 있으세요?
안연출님: <달걀의 일> 이라는 작품을 1월에 올리구요, 그 외에도 판소리를 활용한 <바리이야기>식의 여성 국극 프로젝트는 계속 할 것 같아요. 궁극적으로는 <푸른수염> 설화 다시 쓰기를 해봐야겠죠.
도우너: <당곰이야기>에 이어서 <바리이야기>로 을지공간에서 두 번째로 작품을 올리시는 건데요. 앞으로도 을지공간에서 작품을 올리실 계획이 있으세요?
안연출님: 네 앞으로도 더 하고 싶어요. 저는 제 작품이 대학로 작품의 취향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이상한 위치에 있는 작품인데, 이상한 위치에 있는 극장이라 을지공간에서 공연을 하게 된 것 같아요.
코난, 독고탁, 도우너: (박장대소) 이상한 위치에 있는 극장! 저희의 기치 중에 하나인 “OFF-대학로”보다 훨씬 정확한 표현인데요! 앞으로 저희 극장 소개할 때 그렇게 이야기 해야겠어요.
안연출님: (웃으며) 을지공간은 어떤 이야기든 자유스럽게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느낌이 있었고, 뭐든지 허용 될 수 있는 것 같은 느낌이 있었어요. 을지로 놀러오시는 분들이 20-30대분들이 많다는 것도 좋은 고려요소였구요. 또 을지공간은 지하철역 옆에 있지만, 문의 위치가 골목길 안쪽에 있어서, 관객은 골목길로 꼬불꼬불 들어와서 연극을 보게 되자나요. 그게 하나의 재미있는 경험이 되는거라, 관객분들이 호응도 좋더라구요.
도우너: 앞으로도 을지공간에서 공연 많이 부탁 드리구요, 저희 사무실에도 종종 놀러오세요. 긴 시간동안 인터뷰 응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안연출님: 감사합니다.